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/평가/부정적 평가/정치 (문단 편집) ==== 박영복 금융사기 사건 ==== 박정희 정권은 기업과 정부와의 정경유착과 사기 행위가 정점에 이르렀던 시절로서 많은 사회 정치적 비리가 발생한 시절이었다. 대표적으로 1974년에 일어난 [[https://books.google.co.kr/books?id=WXIwAAAAQBAJ&pg=PT164&lpg=PT164&dq=%EB%B0%95%EC%98%81%EB%B3%B5+%EA%B8%88%EC%9C%B5%EC%82%AC%EA%B8%B0+%EC%82%AC%EA%B1%B4&source=bl&ots=rDn2e9PJ8S&sig=dOZ7Mm2czU95bsNBLyOCdv3C89I&hl=ko&sa=X&ved=0ahUKEwjwjKb_nd_YAhULGpQKHSSiCgwQ6AEIPzAE#v=onepage&q=%EB%B0%95%EC%98%81%EB%B3%B5%20%EA%B8%88%EC%9C%B5%EC%82%AC%EA%B8%B0%20%EC%82%AC%EA%B1%B4&f=false|박영복 금융사기 사건]]이 있다. 1974년 2월에, 4억 8천만 원의 은행 돈을 사취한 초대형 금융사기사건이 터졌다. [[http://news.donga.com/3/all/20060206/8272387/1|#]] 금록통상주식회사의 대표였던 박영복이 범인으로 체포되었는데, 조사 결과 중소기업은행과 서울은행에서 공문서를 위조하여 사기 대출을 받은 액수는 74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. 당시 이 액수는 천문학적인 수치였다. 이 사건을 추궁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재무위가 열리고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남덕우 재무장관 등 관계 장관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. 선원으로 일하던 박영복은 선원을 그만두고 수출실적이 있는 무역회사를 인수하거나 유령회사를 만드는 등 18개나 되는 회사를 소유하고, 사채를 빌려 은행에 신용을 쌓은 뒤 공문서를 위조하여 천문학적 금액을 대출 받아 사취하여, ‘금융사기의 원조’라는 별명을 가졌다. [[http://db.kdemocracy.or.kr/photo-archives/view/00756353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